김태유 교수가 던진 작은돌
2025년 봄, 유튜브 지식 채널 ‘언더스탠딩’에 등장한 한 강의 시리즈가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을 흔들었다. 제목은 「The Civilization 김태유의 위대한 문명사」. 서울대 명예교수 김태유가 5개월간 진행한 이 연재는 단순한 역사 강의가 아니다.
“저출산은 축복이다”, “자유무역은 사기다” 같은 자극적인 화두를 던지며,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사회·경제적 상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지난 8월 16일 에필로그를 끝으로 막을 내린 이 시리즈는, 한국 사회에 불편한 질문을 남긴 하나의 지적 사건으로 기억될 만하다.
“위대한 국가는 정정당당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김태유 교수의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도발적인 명제는 단순하다.
“위대한 국가는 정정당당한 방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대표 사례로 제시한다. 영국이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내생적 혁신만이 아니라, 인도를 비롯한 식민지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 덕분이었다. 실제로 영국은 인도로부터 수십 조 달러 규모의 부를 빼앗아 본국의 산업화 자금으로 활용했다는 연구가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영광의 이면에는, 식민지의 자원과 인력을 빨아들이는 ‘반칙’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를 내생적 성장과 외생적 성장의 구도로 설명한다. 스스로 혁신을 일군 내생적 성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외부 자원과 기회를 끌어온 외생적 성장이 결합되어야 진정한 도약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자유무역의 기수처럼 보이는 미국은 19세기 내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보호관세를 유지하며 자국 산업을 키웠다. 즉, 성공한 나라들은 모두 자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선 뒤에야 자유무역을 설파했고, 그 전에는 보호무역과 편법을 총동원했다.
이 인식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강의 기적’ 역시 교육열과 산업화 같은 내생적 요인과, 미국 원조·베트남 파병 특수 같은 외생적 요인이 결합된 결과였다.
문제는 지금이다. 선진국 문턱에 선 한국이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선 기존의 룰을 그대로 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경고다. 그는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때로는 반칙도 불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도발적 언명은, 국제 질서 속에서 언제나 ‘착한 학생’이 되어온 한국이 이제는 전략적 선택을 고민해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상식을 전복하는 세 가지 주장
① “저출산은 사실 축복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은 국가적 재앙의 다른 이름이다. 인구절벽,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축소. 그러나 김태유 교수는 정반대의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저출산은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값싼 노동력이 성장의 원천이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오히려 질 높은 인재와 첨단 기술이 경제를 좌우한다. 다시 말해, 인구가 많아야 유리하다는 공식은 이미 깨지고 있다. AI와 자동화가 대량 생산을 대신하는 시대, 인구 감소는 과잉 경쟁을 완화하고 고부가가치 사회로 전환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은 격렬한 논란을 불렀다. 지방 소멸과 부양비 증가 같은 현실적 문제를 무시한 낙관론이라는 반박이 많았다. 그러나 적어도 김 교수의 발언은 “인구 감소를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질적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열었다.
② “자유무역은 사기입니다”
경제학 교과서는 자유무역을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원리’로 가르친다. 하지만 김태유 교수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자유무역이란 선진국이 후발국의 추격을 차단하기 위해 만든 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국이 산업혁명 이후 자유무역을 강요하며 세계시장을 장악한 과정, 미국이 제조업을 키우기 위해 오랫동안 극심한 보호무역을 유지했던 역사적 사실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일찍이 “선진국은 보호무역으로 성장한 뒤 사다리를 걷어차고 자유무역을 설교한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교수의 결론은 불편하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때로는 트럼프처럼 자국 우선주의를 택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 질서 속에서의 ‘전략적 반칙’을 요구하는 목소리이자, 무조건적인 자유무역 신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도발이다.
③ “빈부격차는 사실 좋은 겁니다”
빈부격차는 반드시 해소해야 할 사회 문제라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건강한 불평등은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의 상속 제도를 비교한다. 프랑스는 균분상속으로 땅이 세대마다 쪼개져 자본 축적이 어렵게 되었고, 이는 경제 발전을 저해했다. 반면 영국은 장자상속을 통해 사회 내부 불평등은 심했지만, 남은 자식들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마련되었다. 바로 그 불평등이 산업혁명의 숨은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무제한적 격차 확대를 옹호한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일정 수준의 불평등은 혁신과 투자, 모험의 동기부여가 되지만, 극단적 격차는 사회를 파괴한다고 선을 그었다. 핵심은 평등을 절대적 가치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산적 불평등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한국 현실을 향한 직설 ― 관료주의와 에너지 전략
시리즈의 후반부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정조준했다.
23화 “똑똑한 공무원이 한국을 망치는 이유”에서 김 교수는 경직된 관료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의 최우수 인재가 공무원 시험에 몰리면서 민간 혁신이 위축되고, 법과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똑똑한 관료들이 오히려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가장 공감이 컸던 대목이기도 했다.
24화 “무능한 충신 vs 유능한 간신”에서는 리더십의 본질을 짚었다. 그는 “쓴소리를 하는 유능한 간신을 기용할 수 있는 지도자”야말로 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코드 인사와 충성 경쟁이 만연한 오늘날 정치 현실을 겨냥한 메시지였다.
또한 16화 “러시아 가스관이 한국의 미래입니다”에서는 국제 정세와 역행하는 제언을 내놓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가 대러 제재에 나선 상황에서, 그는 오히려 러시아 가스를 북한을 경유해 도입하는 파이프라인 구축을 한국의 장기적 에너지 안보 전략으로 제시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발상일지라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생존을 위해선 반드시 고려해야 할 카드라는 것이다.
부동산 ― “재테크가 아니라 남의 돈을 빼앗는 구조”
김태유 교수의 강의에서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로 지적됐다. 그는 단순한 시장 현상이나 정책 실패 차원을 넘어, 부동산을 한국 경제 침체의 핵심 원인으로 바라보았다.
7화 *“부동산이 흥하면 나라가 망하는 이유”*에서 김 교수는 부동산 불로소득 구조가 생산적 투자 대신 자산 투기에 자원을 몰리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국가 혁신 역량을 약화시킨다고 경고했다.
19화 *“부동산은 재테크 아닙니다, 남의 돈 뺏는 겁니다”*에서는 한국의 부동산 금융 투기를 “남의 돈을 빼앗는 구조”라고 단언했다. 그는 부동산이 개인의 재테크 수단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사회적 기회를 잠식하고 불평등을 확대하는 비생산적 메커니즘임을 지적했다.

20화 *“30년 부동산 정책이 대한민국을 망칠 겁니다”*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부동산 중심 정책들이 청년 세대의 미래를 갉아먹고, 국가 경제를 왜곡시킨다고 분석했다. 단기적 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시장에 기대온 결과, 장기적으로는 성장 동력이 고갈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 22화 *“한국이 선진국 되려면 반칙해야 합니다”*에서도 그는 “한국이 부동산 불로소득에 집착하는 한, 진정한 선진국 도약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국가가 기술과 R&D 투자로 체질 전환을 하지 못한다면, 부동산이라는 늪에 빠져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경고였다.
결국 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부동산 중심의 경제는 퇴행적 구조이며, 이를 혁신 중심·기술 중심의 성장 모델로 바꾸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위태롭다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 그러나 필요한 사고
김태유 교수의 위대한 문명사는 결국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전략 보고서였다.
저출산, 자유무역, 불평등, 관료주의, 에너지 안보까지—그의 주장은 언제나 기존 통념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그래서 더 불편했고, 동시에 더 절실했다.
그의 강의는 위로나 당위가 아닌 전략적 사고를 요구했다. “국제 무대는 정정당당한 경연장이 아니라 생존 게임판”이라는 인식, “때로는 판을 흔들 각오가 필요하다”는 도발은 한국 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물론 그의 주장 중 상당수는 현실에서 실행하기 어렵다. 저출산을 축복으로만 볼 수 없고, 자유무역을 일방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라는 문제제기 자체가 사회적 자산이라는 점이다. 논쟁을 촉발하고 기존 프레임을 흔드는 담론이야말로 미래 전략을 세우는 데 필요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답해야 할 질문
위대한 문명사가 던진 마지막 메시지는 이렇다.
“역사는 승자가 룰을 만들었다. 이제 한국은 어떤 룰을 따르고, 만들 것인가?”
김태유 교수의 도발적 강의는 끝났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저출산 사회, 글로벌 무역질서, 불평등의 역설, 관료주의의 벽, 에너지 안보라는 과제 앞에서, 한국은 정직한 플레이어로만 남을 것인지, 전략적 반칙을 감행할 용기를 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한국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불가피한 지적 여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