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8일, 서울행정법원은 가수 유승준(48·스티븐 승준 유) 씨의 손을 또 한 번 들어줬다. 2002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병역 기피’ 논란으로 입국이 금지된 지 23년, 그의 한국행을 둘러싼 법정 다툼은 세 번째 승소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하지만 이 판결이 곧 그의 귀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법부는 왜 반복해서 그의 손을 들어주는가? 정부는 왜 대법원 판결조차 따르지 않으며 그의 입국을 막아서는가? 20여 년의 세월에도 아물지 않은 상처와 분노,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한 복잡한 법리는 무엇인가. krimnews는 한 개인의 송사를 넘어, 대한민국 사회의 공정과 병역, 법치와 국민 정서라는 무거운 주제를 관통하는 ‘유승준 사태’ 23년의 역사를 중립적인 시각에서 되짚어 본다.
Part 1. 시간 순으로 본 23년의 굴곡
1. 최정상 아이돌의 약속과 추락 (1997년 ~ 2002년 2월)
1997년 데뷔한 유승준은 ‘가위’, ‘나나나’, ‘열정’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2000년대 초반 가요계를 평정한 최정상 스타였다. 특히 ‘아름다운 청년’으로 불리며 반듯하고 건강한 이미지를 쌓았고, 방송 등을 통해 “때가 되면 반드시 군대에 가겠다”고 수차례 공언하며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2001년 허리디스크 수술 후 4급 판정을 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가 결정되자, 그는 “현역으로 가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운명은 2002년 1월 바뀌었다. 입대를 3개월 앞두고 일본 공연 등의 이유로 출국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 소식은 대한민국 사회를 배신감과 분노로 들끓게 했다. 병무청은 법무부에 즉시 입국금지를 요청했고, 법무부는 이를 받아들여 출입국관리법 제11조(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에 대해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
를 근거로 유승준을 입국금지 대상자 명단에 올렸다. 2002년 2월 2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입국을 거부당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2. 법의 문을 두드리다 (2015년 ~ 2020년, 1차 소송)
중국 등에서 활동하던 유승준은 13년 만인 2015년, 인터넷 방송을 통해 무릎 꿇고 사죄하며 입국 허용을 호소했다. 같은 해 9월, 그는 주 LA 총영사관에 재외동포에게 발급되는 ‘F-4 비자’를 신청했다. 병역을 기피했더라도 만 38세(현행법 40세)가 넘으면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당시 재외동포법 규정에 기댄 것이었다.
하지만 LA 총영사관은 ‘입국 자체가 금지된 인물’이라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이에 유승준은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한 처사”라며 첫 번째 소송을 시작했다. 1, 2심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지만, 2019년 7월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의 논리는 **”정부가 ‘입국금지 결정’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은 절차적으로 위법하다”**는 것이었다. 행정기관은 과거의 결정에 얽매이지 말고, 비자 발급 신청이 들어온 시점에서 법에 따라 다시 판단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 판결은 2020년 3월 최종 확정됐다.
3. 되풀이된 거부와 끝나지 않는 소송 (2020년 ~ 현재)
대법원 최종 승소에도 LA 총영사관은 비자 발급을 재차 거부했다. 이번에는 “유승준의 입국은 대한민국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구체적인 사유를 들었다. 결국 유승준은 2020년 10월 두 번째 소송을 냈고, 이 소송 역시 2023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LA 총영사관은 2024년 6월, 세 번째 비자 발급 거부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이에 불복한 유승준이 제기한 세 번째 소송의 1심 결과가 바로 오늘 나온 ‘원고 승소’ 판결이다.
Part 2. 무엇이 쟁점인가?
이 기나긴 싸움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쟁점을 중립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쟁점 1: ‘법의 잣대’ vs ‘국민 정서’
법원과 정부(국민 여론)의 시각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다.
- 법원의 시각 (절차와 원칙): 사법부는 유승준의 과거 행위를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행정기관의 처분이 법이 정한 절차와 원칙(비례의 원칙, 적법절차 등)을 준수했는지를 심판한다. 이번 1심 재판부가 “비자 거부로 얻는 공익보다 개인이 입는 불이익이 더 크다”며 ‘비례의 원칙 위반’과 ‘재량권 남용’을 지적한 것이 대표적이다. 즉, 법원은 “괘씸하다고 해서 법의 한계를 넘는 처분을 내릴 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 정부와 국민의 시각 (정의와 신뢰): 반면 정부의 처분과 이를 지지하는 다수 여론의 근저에는 ‘신뢰’와 ‘공정’의 가치가 있다. 병역은 대한민국 국민의 신성한 의무이며, 이를 공개적으로 약속했던 국민적 스타가 약속을 뒤집고 병역을 회피한 것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 행위라는 인식이 짙다. 그의 입국을 허용할 경우,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청년들의 사기를 저하하고 병역 기피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는 ‘공익적 우려’가 정부의 논리이자 여론의 핵심이다.
쟁점 2: 그는 ‘외국인’인가, ‘재외동포’인가?
유승준이 신청하는 F-4 비자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대한민국 국적 회복이나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인인 그가 ‘과거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외국 국적 동포’로서, 재외동포법에 명시된 체류 자격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재외동포법은 병역 기피자라 할지라도 일정 연령이 지나면 인도적 차원에서 국내 체류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 법원은 이 법의 취지에 따라 판단해야 하지만, 정부는 그가 일반적인 재외동포가 아닌 ‘국익을 해할 수 있는 특수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쟁점 3: 처분의 주체는 누구인가?
대법원 판결의 핵심 중 하나는 ‘입국금지 결정’과 ‘비자 발급’은 별개의 행정행위라는 점이다. 입국금지는 법무부 장관의 권한이지만, 비자 발급은 재외공관장(LA 총영사)의 권한이다. 대법원은 LA 총영사가 법무부의 과거 결정에 구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재량권을 행사해 비자 발급 여부를 다시 심사했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외교부는 사실상 법무부의 입국금지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어, 법원의 판결 취지를 이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론: 쓰이지 않은 마지막 장

23년이 흐른 지금, 유승준 사태는 한 연예인의 개인사를 넘어 우리 사회에 여러 질문을 던진다. 한번 무너진 사회적 신뢰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가. 국민적 분노는 법의 원칙을 넘어설 수 있는가. 행정부의 재량권은 사법부의 판단 위에 설 수 있는가.
법원은 다시 한번 ‘절차적 정의’와 ‘법치주의’의 손을 들어줬다. 이제 공은 또다시 정부로 넘어갔다. 정부가 항소를 통해 법적 다툼을 이어갈지, 혹은 대법원의 거듭된 판결 취지를 존중해 다른 결정을 내릴지, 그 선택에 따라 이 기나긴 사태의 마지막 장이 쓰일 것이다. 그 결말은, 법치와 국민 정서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선례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