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셰프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궁중음식
2025년 가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폭군의 셰프(Bon Appétit, Your Majesty)’가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K-푸드 열풍에 새로운 불을 지피고 있다. 파리 미슐랭 3스타 셰프가 조선 시대로 타임슬립하여 절대 미각을 지닌 폭군을 만난다는 판타지 로맨스 설정 안에, 한국 전통 음식의 깊이와 현대적 해석의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녹여내며 전 세계 시청자들의 눈과 혀를 동시에 사로잡은 것이다.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작중 등장하는 ‘고추장 버터 비빔밥’, ‘재첩 된장국’, ‘어만두’ 등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레시피가 공유되고, 해외 유튜버들의 ‘쿡방’ 콘텐츠로 재탄생하는 등 K-푸드의 새로운 글로벌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본지는 ‘폭군의 셰프’가 어떻게 한국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는지, 그 성공 비결을 심층 분석했다.
전통과 혁신의 경계를 허문 ‘K-퓨전 다이닝’
‘폭군의 셰프’ 속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익숙함 속의 새로움’이다. 주인공 연지영(임윤아 분)은 조선 시대의 식재료와 조리법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이 체득한 현대 프랑스 요리 기법을 과감하게 접목한다.
고추장 버터 비빔밥: 드라마의 상징적인 메뉴인 ‘고추장 버터 비빔밥’이 대표적이다. 비빔밥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메뉴에 참기름 대신 프랑스 요리의 기본 소스인 ‘뵈르 누아제(beurre noisette, 헤이즐넛 향이 나도록 태운 버터)’를 사용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고추장의 알싸한 매콤함과 버터의 고소하고 깊은 풍미가 만나면서, 외국인들에게는 고추장의 매운맛 장벽을 낮추고 한국인에게는 상상치 못한 새로운 맛의 조화를 선사했다. 이는 “K-소스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창의적인 시도”라는 평을 받으며 SNS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재해석된 궁중 요리: 드라마는 잊혀가던 전통 궁중 요리에도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밀가루 피 대신 생선 살로 소를 감싸 만드는 궁중 만두인 어만두(魚饅頭)는 1600년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도 기록된 고급 요리다. 극 중에서 연지영은 전통 어만두의 형태는 유지하되, 속 재료에 허브를 가미하고 곁들이는 소스를 현대적으로 변용해 시각적 아름다움과 맛의 섬세함을 극대화했다.
된장 파스타, 고추장 버터 비빔밥, 수비드 스테이크와 장아찌 곁들임. 이는 모두 드라마 속 대표 퓨전 요리다. 여기서 핵심은 ‘낯설지만 거부감은 없는 맛’이다. 서양 시청자에게는 익숙한 파스타와 스테이크라는 형식에, 한국적인 장맛이 가미되면서 ‘새롭지만 친근한’ 조화를 이룬다. 이는 세계 음식 시장에서 한식이 뻗어 나가는 데 가장 현실적인 접근법이기도 하다.
또한, 본래 두부가 주재료였던 맑은 탕인 연포탕(軟泡湯)을 낙지를 주재료로 사용하면서도, 채소 육수를 블렌딩하여 맑고 깊은 맛을 내는 현대적 조리법을 선보였다. 이는 ‘연포탕=낙지탕’이라는 현대의 대중적 인식을 따르면서도, 셰프의 창의성을 더해 요리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례다.
‘대장금’을 넘어, ‘스토리’를 입은 음식의 힘
드라마는 단순히 요리 장면에 머물지 않는다. 궁중 음식 재현과 수라상 차림, 상하관계를 반영한 식사 예절까지 시각적으로 담아낸다.

예를 들어, 국왕 앞에 올려지는 수라상은 12첩 반상 형태로, 국·탕·전·김치·장아찌가 정갈하게 놓인다. 이는 단순한 ‘메뉴 소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음식이 권력·질서·예의를 반영하는 문화적 구조물임을 보여준다.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한식은 단순한 밥상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코드”라는 메시지로 다가간다.
20여 년 전 ‘대장금’이 한국의 궁중음식을 세계에 처음 알렸다면, ‘폭군의 셰프’는 그 음식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을 통해 한 단계 진화한 소통을 시도한다. 모든 요리는 폭군 이헌(이채민 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개체이자, 정치적 암투 속에서 자신의 뜻을 전하는 비밀스러운 언어로 작용한다.
어머니와의 아픈 기억이 담긴 재첩 된장국 한 그릇에 폭군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 국운이 걸린 요리 대결에서 선보인 화려한 수비드 스테이크 등은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을 넘어, 사람을 위로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문화 콘텐츠’임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한 유력 매체는 “‘폭군의 셰프’는 맛의 유니버설리즘(Universalism)을 증명했다. 화면 속 요리는 한국의 것이지만, 그 안에 담긴 그리움, 사랑, 위로의 감정은 전 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며 드라마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만들어보고 싶다!”… 글로벌 팬덤의 자발적 확산
‘폭군의 셰프’가 일으킨 K-푸드 열풍은 일방적인 문화 전파가 아닌, 글로벌 팬덤의 ‘자발적 참여’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튜브와 틱톡 등에서는 “#tyrantschefrecipe”, “#폭군의셰프레시피” 등의 해시태그를 단 요리 영상들이 연일 업로드되고 있다.
미국의 한 요리 유튜버는 “고추장과 버터의 조합이 믿기지 않았지만, 드라마를 보고 따라 만들어 본 후 내 인생 최고의 비빔밥이 되었다”며 극찬했고, 프랑스의 한 시청자는 “한국의 된장(Doenjang)을 이용해 파스타를 만드는 장면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 당장 아시안 마켓으로 달려갈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K-콘텐츠의 높아진 위상과 더불어, 한식이 가진 ‘건강하고 다채로운 맛’이라는 본연의 매력이 시너지를 낸 결과라고 분석한다. 드라마는 그 매력을 발견하게 하는 세련되고 흥미로운 ‘가이드’ 역할을 한 셈이다.
‘폭군의 셰프’는 잘 만든 K-드라마 한 편이 어떻게 전 세계의 식문화 트렌드를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오늘 저녁, 당신의 식탁 위에 ‘고추장 버터 비빔밥’을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화면 속 감동이 혀끝에서 현실이 되는 새로운 미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