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마침내 금리 인하의 닻을 올렸다. 시장의 오랜 기다림에 화답하듯 기준금리를 0.25%p 낮춘 이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긴축의 시대가 끝나고 완화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축포처럼 보인다. 그러나 축포 소리가 잦아들자 시장에 남은 것은 환호가 아닌 깊은 혼란과 의문이었다. 마치 안개가 자욱한 바다를 향해 출항을 선언했지만, 선장 제롬 파월은 명확한 항해 지도를 보여주지 않은 채 닻을 올렸다.

이번 연준의 결정은 단순한 금리 인하가 아니라, 향후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이 나아갈 새로운 국면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풀기 어려운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성장과 인플레이션이 강해지는데 금리를 내린다고?
중앙은행의 역할은 경제라는 자동차의 속도를 조절하는 운전자와 같다. 경기가 과열되고 물가가 오르면(자동차가 너무 빨리 달리면) 브레이크를 밟아 금리를 올리고, 경기가 침체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자동차가 너무 느려지면) 액셀을 밟아 금리를 내린다. 이것이 바로 통화정책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이번 연준의 행동은 이 기본 원리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인다. 연준은 금리를 인하하면서 동시에 올해와 내년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심지어 물가 상승률 전망치마저 소폭 올렸다. 이는 마치 자동차가 앞으로 더 빨리 달릴 것 같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액셀을 밟는 것과 같은, 지극히 이례적인 모습이다.
이 모순적인 행동의 열쇠는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한 ‘위험 관리(risk management)’라는 표현에 숨어있다. 연준은 이번 금리 인하가 경제가 튼튼해서가 아니라, 고용 시장에 드리운 ‘잠재적 위험’에 대한 보험을 드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몇 달간 일자리 증가세가 뚜렷하게 둔화되자, 연준은 본격적인 경기 침체로 이어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연준의 정책 우선순위가 지난 2년간의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고용 시장 방어’로 미묘하게 전환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연준은 이제 약간의 물가 상승을 감수하더라도 일자리가 무너지는 것은 막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과거에는 인플레이션 수치가 가장 중요한 시험 성적표였다면, 이제는 고용 보고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셈이다.
시장은 왜 환호하지 않았나: 행동보다 말이 더 강했다
그렇다면 금리 인하라는 선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왜 혼란에 빠졌을까? 투자자들은 연준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에 담긴 ‘메시지’와 ‘전망’에 더 주목했기 때문이다.
시장은 이미 0.25%p 금리 인하를 100% 확신하고 있었다. 따라서 금리인하 자체는 새로운 소식이 아니었다. 시장을 움직인 것은 금리 인하와 함께 발표된 두 가지, 즉 ‘점도표’와 파월 의장의 신중한 발언이었다.
‘점도표’는 연준 위원들이 앞으로 금리가 어떻게 될지를 각자 점을 찍어 예측한 익명의 설문조사다. 이번 점도표는 연말까지 두 차례의 추가 인하를 시사했지만, 동시에 위원들 간의 의견 대립이 극심하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위원들은 추가 인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향후 금리 경로가 한두 명의 생각만 바뀌어도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파월 의장은 “미리 정해진 길은 없다”고 못 박으며 , 이번 인하가 연속적인 완화 정책의 시작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시장은 ‘비둘기(완화 선호)’의 날갯짓(금리 인하)을 기대했지만, ‘매(긴축 선호)’의 신중한 목소리를 들은 셈이다.
그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금리가 인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먼 미래의 금리 기대감을 반영하는 장기 국채 금리는 오히려 상승했고, 달러 가치 또한 강세로 돌아섰다. 주식 시장 역시 초반의 상승세를 반납하고 혼조세로 마감했다. 시장은 연준의 이번 조치를 본격적인 경기 부양 신호가 아닌, ‘마지못해 하는 소극적 대응’으로 해석하고, 앞으로의 금리 인하 경로가 예상보다 훨씬 더디고 험난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경제가 마주한 딜레마
연준의 이러한 모호한 태도는 한국과 같은 신흥국 경제에 즉각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통상적으로 미국의 금리 인하는 달러 약세를 유발해 원화 가치를 안정시키고 외국인 자금 유입을 촉진하는 긍정적 신호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강세를 보이자, 원/달러 환율은 급등하며 1400원 선을 위협했다.
이는 한국은행을 매우 어려운 정책적 딜레마에 빠뜨린다. 국내 경기가 둔화되고 있어 금리를 내려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가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어 원화 약세와 자본 유출을 더욱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동결하자니 가뜩이나 어려운 내수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연준의 불확실한 행보는 한국은행의 정책적 자율성을 제약하고, 환율과 경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도록 강요한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시장 전반의 불안감 속에서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특정 섹터, 특히 인공지능(AI) 붐의 최대 수혜주인 반도체 대장주들로 집중적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단기적인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을 넘어, 거대한 기술 혁신이라는 구조적 성장 스토리에 베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 예측 불가능성의 시대, 무엇을 봐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연준의 9월 금리 인하는 완화 사이클의 ‘시작’을 알렸지만, 그 ‘경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예측하기 어려울지를 명확히 보여주었을 뿐이다.
이제 투자자와 정책 당국자들은 연준의 입만 바라보는 대신, 매달 발표되는 미국의 고용 지표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실업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진다면 연준은 물가와 상관없이 추가 인하의 명분을 얻게 될 것이고, 고용이 예상외로 견조하다면 금리 인하는 언제든 멈출 수 있다.
이제 중앙은행이 명확한 지도를 제공하던 시대를 지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을 데이터라는 나침반에만 의지해 항해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보다는, 변화하는 데이터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위험을 관리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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